animal collective – merriweather post pavilion (2009).

Albums, REVIEW — By happy2 on 3월 15, 2010 at 9:05 오후

animal collective – merriweather post pavilion

앨범커버를 본다. 저것은 평면이다. 하지만 착시 현상으로 인해 굴곡이 진 것처럼 보인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나뭇잎들이 물결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매직아이라고 불리는 효과이다. 나는 애니멀 콜렉티브의 이 앨범이 바로 저런 몇곂의 레이어로 이루어진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그 레이어들은 평면 -> 입체 -> 운동으로 나아간다. 각 레이어마다 차원이 변화한다.

우선 평면만을 보자. 이것은 팝송집이다. 그것도 한곡도 뺄 노래가 없을 정도의 훌륭한 팝송집이다. 올해 수많은 앨범들이 나왔지만 멜로디를 통해, 오직 멜로디만으로 나를 감동시킨, 감동적인 멜로디를 가진 앨범은 이 앨범 하나 뿐이었다. 그럼 이제 굴곡을 보자. 이 앨범은 훌륭한 팝송집인 동시에 (내용) 엄청난 형식을 가진, 스타일리쉬한 실험들을 담고 있다. 팝송 + 혁신적 형식이라는 점에서 절충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여기서는 노래가 파괴되지 않고 유지되고 장려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앨범의 형식들은 일단 구성적인 면에서 전형적인 곡이 없다. 1절 후렴 2절 후렴 브릿지 후렴 반복 이런 노래는 하나도 없다. 어떤 곡은 도입부와 단절되서 마치 두곡을 합친 느낌을 주는 곡도 있고 하나의 멜로디가 마냥 변주되는 곡도 있다. 그리고 텍스쳐의 차원에서, 이 앨범은 완전히 난리가 났다. 한마디로 내용물도 충실하지만 포장도 현란하고 다채로운 그런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최상급의 음악의 기준에 부합하는 음악이라는 얘기다. 좋은 노래 + 혁신적인 형식-스타일. 이것은 좋은 음악의 조건이다. 특히 그 둘이 잘 어울리고 완벽하게 화학적 융합을 이루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제 세번째 차원을 보자. 운동. 이 음악들은 평면의 차원(노래)과 입체의 차원(텍스쳐)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오직 하나의 실제적인 차원,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하나의 차원에 복무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것은 운동이다. 평면-노래와 입체-텍스쳐는 운동-싸이키델릭을 위해 존재한다. 그 효과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매직아이는 인간에게 평면으로도 보이고 입체로도 보이고 운동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매직아이가 만들어진 이유를 생각해보면 운동으로 보이는 것이 그것의 진정한 효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애니멀 콜렉티브의 이 앨범도 마찬가지다. 이 앨범은 운동-싸이키델릭의 차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만개한다. 평면-노래와 입체-텍스쳐는 그것을 위한 장치들이다.

싸이키델릭이 뭔지 궁금하신 분들은 술을 마셔보면 된다. 그럼 숟가락을 구부리지 않고도 숟가락이 구부러지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운동. 이 앨범의 수많은 음들은 운동한다. 저 앨범커버의 나뭇잎처럼. 하지만 그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매직아이를 보는 정도의 다소의 음악적 수련을 필요로 한다. 혹은 재능이라고 할까. 어떤 사람에게는 평면으로만 보일 것이고 입체까지는 볼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운동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이 앨범이 대중적으로 대히트를 하지 못한 이유이다.

왜일까. 이 앨범은 훌륭한 팝송집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게 아니다. 단순한 팝송만으로 따지면 이 앨범은 올해의 인기 가요들에 비교할때 경쟁력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매직아이의 존재 이유는, 즉 이 앨범의 노래들의 존재 이유는 팝송으로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앨범은 운동에서 비로소 자신의 비밀의 문을 연다. 나뭇잎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에, 비로소 이 앨범의 진가가 발휘된다. 이것은 비단 평면-노래 뿐만 아니라 입체-텍스쳐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말이다. 평면-노래와 입체-텍스쳐는 오직 운동-싸이키델릭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싸이키델릭에 이르지 못하는 감상은 이 앨범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감상이 된다.

리듬도 마찬가지다. 좋은 멜로디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의 리듬은 춤추기에는 좋지 않다. 일렉트로닉이긴 하지만 댄스는 아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앨범은 춤을 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앨범의 리듬들은 분절되어 있다. 그리고 느릿하다. 애초에 그루브를 만들기 위핸 리듬이 아니다. 이 앨범의 리듬들은 텍스쳐와 마찬가지로 입체의 차원에서 운동-싸이키델릭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러니 운동-싸이키델릭에 이르지 못한다면 단순한 평면-노래와 입체-리듬만으로는 약간 지루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좋지만 뭔가 지루하다 뭐 이 정도의 느낌일 것이다. 그것은 운동-싸이키델릭으로 진입하기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운동-싸이키델릭으로 진입하기 위해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입체-텍스쳐다. 이것은 현대 대중 음악의 공공연한 비밀로서 사람들이 괜히 텍스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부터 비밀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음들이 분자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운동이 생겨난다. 운동-싸이키델릭은 평면을 해체하고 입체를 녹여버린다. 모든 것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들기 시작한다. 마치 마이 걸스의 뮤비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멤버들이 녹아버리는 이미지처럼. 텍스쳐들은 분자화되서 청자를 세포의 차원에서 녹이기 시작한다. 싸이키델릭은 그렇게 주변 환경과 녹아드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촉매제가 바로 음이다. 소리다. 소리를 가지고 거의 마약에 가까운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현대 대중음악 중의 몇몇 실험음악들이다.

그 작용은 크게 나누면 온기와 한기로 나뉜다. 발열을 시키고 달아오르게 만드는 음악들이 있고 한기를 내서 차갑게 만드는 음악들이 있다. 비유하자면 (단순히 비유인 것만은 아니지만) 어퍼 계열의 마약과 다운 계열의 마약과 비슷한 것이다. 이 앨범은 다운 계열이다. 비슷한 예로는 올해 한국에서 발표된 황보령의 3집이 있다. 이 두 앨범은 한기를 내는 다운 계열의 텍스쳐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있다. 괜히 내가 황보령의 3집을 애니멀 콜렉티브와 비교한 것이 아니다.

이 앨범을 100% 즐기는 방법은 누워서 헤드폰으로 듣는 것이다. 눈을 감고 반수면 상태에서 듣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을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다 좋지만 머리는 어딘가에 닿게 만들어줘야 한다. 머리의 무게를 부담하는 것이 목이 아니게 되는 상태. 그것이 싸이키델릭 음악을 듣는 데 가장 좋은 상태다. 머리가 땅에 닿을 때 사람들의 무의식이 의식을 넘어서서 활동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밤에 자기 전에 이런저런 영감들이 떠오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싸이키델릭, 도취라는 것은 꿈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꿈은 이미지이고 그래서 아폴론의 영역이다. 반면 도취는 무아의 경지, 디오니소스의 영역에 속한다. 아폴론적 음악은 리듬 위주이고 지적이다. 반면 디오니소스 음악은 정적이고 선율적이다. 바로 애니멀 콜렉티브의 음악처럼 말이다. 선율. 선율이야말로 모든 디오니소스적 음악의 특징이다. 엠비언트 음악들에 선율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 앨범이 일렉트로닉 팝이 아니라 싸이키델릭 팝인 이유. 이 앨범에는 리듬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은 댄스를 위한 것이 아니다. 댄스를 목적으로 이 앨범을 듣는다면 이 앨범의 리듬들은 엄청 기괴하게 보일 것이다. 툭툭 끊기고 그루브라고는 거의 없는 리듬들. 이 리듬들은 운동-싸이키델릭에 최적화된 리듬들이기 때문이다. 한기를 내는 텍스쳐들과 합쳐져서 소리가 분자화되서 인간을 싸이키델릭 상태로 데려 가기 위해 만들어진 리듬인 것이다.

이 앨범은 평면으로 들어도 좋다. 입체로 들어도 좋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운동으로 듣는 것이다. 이 앨범의 대단함은 운동을 위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평면의 차원민으로도 올해의 다른 앨범들을 가뿐히 제치며, 입체의 차원만으로도 올해의 다른 텍스쳐 위주의 앨범들을 무한히 능가한다는 것에 있다. 즉 운동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이 앨범은 올해의 앨범이라는 얘기다. 단순히 평면-노래 만으로.

입체-텍스쳐 만으로. 물론 앞서 말했듯이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뭐 원래 이상함이라는 건 애니멀 콜렉티브 특유의 트레이드 마크 비슷한 거 아니었던가. 위어드하다는 것. 그래서 그냥 개성으로 넘기는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본다.

평면-노래로 볼때 이 앨범은 개성있는 팝송집이다. 입체-텍스쳐로 볼때 이 앨범은 현란한 실험체다. 그리고 그 모든 개성적 노래들과 현란한 텍스쳐, 리듬들은 운동-싸이키델릭을 위해 봉사하는,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음들인 것이다. 음악은 시간 예술이다. 하지만 애니멀 콜렉티브의 이 앨범은 시간 예술은 음악을 운동 예술로 바꿔놓는다. 그것은 매직아이와 마찬가지로 매직이다. 현대 대중 음악의 실험들은 바로 그런 매직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연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의 효과는 앨범커버로 설명하면 간단하다. 저 무수한 나뭇잎들이 우리 몸에 들어와서 흐른다. 그것이 운동-싸이키델릭으로서의 이 앨범의 진정한 효과다. 시간이 아니라 운동. 음이 그런 분자적인 운동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토록 현란한 텍스쳐와 감동적인 멜로디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선율과 질감. 그것이 운동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현대 대중 음악의 발견이고 그들 특유의 발명이다. 다른 어떤 시대의 어떤 음악도 이런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클래식에 있어서도 현대 전자음악에서 최초로 개발된 것이고 그 대중화는 60년대의 크라우트록, 스페이스록, 엠비언트, 싸이키델릭 등으로 이루어졌다. 브라이언 이노나 칸같은 그룹이 대표적이다. 특히 독일 크라우트록 그룹들은 현대 전자 음악 작곡가들을 스승으로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슈게이징 포스트록과 idm 등에서 그 운동-싸이키델릭은 계속해서 추구되고 있다. 약간씩 변주되고 변형되면서. 그런 운동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내공은 뮤지션마다 다르다. 폭풍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무늬만 실험이고 실제로는 평면에 머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실험들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애니멀 콜렉티브의 경지는 그다지 독특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 강렬도도 가장 강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애니멀 콜렉티브 특유의 독자적인 성취가 있다면 평면-입체-운동 이 세차원 모두에서 즐길 수 있는 세겹의 레이어를 가진 음악을 만들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물론 개성적인 멜로디와 개성적인 텍스쳐도 그들의 장점들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앨범이 현대 대중 음악에 있어서 운동-싸이키델릭의 최고의 경지에 이르른 것이냐하면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음악으로 약물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면 좀 더 언더그라운드로 깊숙히 들어와야 한다.

마치 라디오헤드가 포스트록 idm 음악들을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 것처럼 애니멀 콜렉티브도 음악으로 운동-싸이키델릭을 만드는 실험 음악들을 대중들에게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연결이라는 건 다른게 아니라 음악적으로 이런 경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의미이다. 음악이 인간에게 이런 효과도 줄 수 있다는 것. 음악에서 실험은 바로 그런 새로운 효과, 새로운 감정,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실험의 결과들이 대중음악으로 흡수되어 활용되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애니멀 콜렉티브의 이 앨범은 운동-싸이키델릭 실험 음악들로 인도하는 치즈케이크이고 절충주의의 위대한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얼마전에 나온 아틀라스 사운드와도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역시 평면, 즉 좋은 노래, 좋은 멜로디를 시작부터 끝까지 한곡도 뺄 수 없게 만들어놨다는 점에 있다. 그 점에서 노래를 완전히 파괴하는 드론 노이즈, 싸이키델릭 프리포크 그룹들과 차별화된다. 절충주의라고 부르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드론-싸이키델릭의 세계로 통하는 비밀의 문의 입구라고 할까.

일단 몸에서 나뭇잎들이 흐르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을 몰랐을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음악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앨범의 빛나는 멜로디들을 즐기다 보면 어느 샌가 몸에 나뭇잎들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앨범은 평면적 음악 리스너들을 입체, 더 나아가 운동의 차원으로 이끄는, 청자를 비밀의 문으로 데려다주는 역할을 한다.

평면-좋은 멜로디. 입체-한기를 불러일으키는 텍스쳐들. 리듬들. 운동-싸이키델릭. 모든 소리들이 합쳐진 효과. 이 세가지 레이어를 가진 음악은 애니멀 콜렉티브의 이 앨범이 유일하다. 보통은 평면만 가지고 있거나 입체만 가지고 있거나 운동만 가지고 있거나 그런 경우가 많다. 그리고 평면+입체, 혹은 평면+운동. 전자는 인터폴이고 후자는 스매싱 펌킨스다. 입체+운동. 이것이 생각보다 더 커다란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황보령은 입체적 텍스쳐로 한기를 불러 일으키긴 했지만 싸이키델릭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쨌든 입체+운동의 음악 이 세계 어딘가에 많이 존재한다고 해도 평면+입체+운동의 음악은 애니멀 콜렉티브 밖에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런 요소가 존재하는 음악은 있겠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평면으로도 완결된 음악이고 입체로도 완결된 음악이고 운동으로도 완결된, 즉 세겹이면서도 한겹마다 완결되어 따로 즐길 수 있는, 한가지 차원만으로도 완전한 음악이 되는 음악을 말하는 것이다. 마치 저 앨범커버처럼 이 앨범에는

세가지 차원이 동시에 존재하며 그중 어떤 차원으로도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평면-노래, 입체-텍스쳐, 운동-싸이키델릭. 말하자면 이 앨범은 자신의 앨범커버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존재에 세가지 작품이 동시에 들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애니멀 콜렉티브 자신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세번째 차원으로 청자들이 즐기는 것일 것이다. 이 세계는 물질로 고체로 고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뭇잎들은 분자의 차원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양자역학의 차원에서 보면 이 세계는 끊임없이 운동 중이다. 그것을 음악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싸이키델릭의 세계다. 들뢰즈 식으로

말하면 분자-되기. 음들이 분자적 흐름이 되어서 몸속에서 흐르는 것. 그렇게 현대 대중 음악의 실험가들은 음악을 뉴턴 물리학이 아닌 양자역학의 세계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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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1. 김똑딱 님의 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글쓴이도 몇 년 뒤에 이 글을 다시 보면 손발을 펴기 어려울 거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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