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는 왜?03_백패커에서의 만남

HEADLINE, SERIES, 해외음악여행기 — By 더부룩 on 4월 26, 2010 at 1: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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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번Melbourne의 하늘은 예상과는 달리 우중충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햇살은 엄청 따가웠다. 픽시즈Pixies가 말한 것 처럼 정말로 남반구 하늘에 구멍이 뚫려 있기는 한가 보다. 거의 24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나는 탈진에 다다랐고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거의 쓰러지듯이 잤다. 정신을 차려 보니 버스는 이미 멈춰 있고 운전사가 날 부르고 있다. 캐리어를 질질 끌며 앞으로 묵게 될 백패커즈 ‘Hotel Discovery’에 방을 구했다. 호텔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인테리어는 조잡했다. 조명은 어둡고 엘리베이터는 오래된 기계식이어서 한 층을 올라가는데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내가 묵을 방에는 홈리스처럼 보이는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가 TV까지 가져다 놓고 XBox를 하다가 인사를 보낸다.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방이다. 철제 뼈대의 마른 2층 침대가 4개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벽은 흰 페인트로 대충 칠을 해 놓았고, 창문은 문 옆에 작게 하나가 나 있는 것이 전부라 불을 켜놓지 않으면 하루 종일 어두웠다.

 화장실도 둘러보았는데, 4층 전체에 공용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었다. 화장실은 더럽고 지저분했고, 곰팡이 냄새가 났다. 곰팡이 냄새는 비단 화장실 뿐만 아니라 복도, 방 가릴 것 없이 4층 전체에서 풍겨왔다(여행이 시작된 나중에야 나는 곰팡이 냄새가 양놈들 땀냄새보다는 낫다는 것을 깨닫고 호텔 디스커버리의 곰팡이 냄새를 추억하곤 했다). 왠지 모르게 불결한 느낌이, 호텔 디스커버리는 망해가는 싸구려 병동을 연상케 했다.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나와 비슷한 젊고 돈 없는 여행자들로 이 백팩커즈는 북새통을 이루었다. 세기말적 암울한 분위기가 건물 전체에서 뿜어져 나왔지만 여기서 묵는 여행자들은 정말로 활기찬 사람들이었고, 그런 활기가 이 곳의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공짜 아침까지 준다고 하니, 나는 대충 만족하면서 일을 구할 때 까지는 여기에서 지내기로 했다. 짐을 풀고 씻은 후, 바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니 잠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나는 바로 침대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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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부터 나는 멜번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본격적으로 호주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호텔 디스커버리에서 만난 룸메이트들은 여행 중 처음으로 만난 친구들이므로 여기에 언급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친구들은 나와 좋은 대화 상대가 되어 주었고, 게다가 재미있기도 했다.

 처음 방을 같이 쓰던 할아버지가 나가버리고 곧 들어온 두 명의 친구 율리안Julian과 안드레Andre는 (역시나 내 예감대로) 독일인이었다. 하루키가 언젠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독일 사람은 전세계에서 만날 수 있다. 어디에나 널린 것이 독일인들이다’라고 쓴 것 같은데, 과연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지하의 바부터 옥상의 정원까지 백패커의 모든 곳에서 독일 말 특유의 강한 발음들이 들려왔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 맥주를 마시거나, 또는 맥주를 마시면서 서로 농담을 주고 받는 짧은 머리의 독일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왠지는 잘 모르겠는데 독일 남자들은 항상 머리를 짧게 쳤다(짧은 머리에 맥주를 마시면서 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당신한테 말을 건다면 97.8%는 독일 친구라고 보면 된다). 키도 큰 편인데 머리도 반 삭발이나 스포츠로 다니니 좀 위압적으로 보였다. 물론 위압적으로 보이기만 했을 뿐 웃긴 친구들이 많았다. 처음 만나 서로 어색함을 느낄 때, 나는 퍼뜩 어느 책에서 읽은 ‘외국인과 친구되는 비법’을 기억 해내고, 서로 자기나라 말을 가르쳐 주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너희 나라 말로 Fuck이 뭐니What is ‘fuck’ in your lanuage?”
 ”음.. 따라해봐. 쌰이쎼Scheisse”
 ”사이쎄, 싸이쎄, 쌰이쎄.. 음, 어렵네.”
 ”아냐, 네 발음 괜찮은 편이야. 너희 나라 말로는 뭐라고 하니?”
 ”음, Fuck you는 씨발놈아Ssibal-noma이라고 하고, Fuck은 씨발Ssibal이라고 하면되. 씨발, 씨발놈아”
 ”시발? 시이팔? 시이발너마”
 ”아니 아니, 시를 더 강하게. 씨이-”
 ”씨이바(이하 생략)”
 그렇게 한참 서로 욕을 하고 내가 독일어 필수 긴급 표현(“맥주 좀 주세요Ein Bier bitte!”)까지 배운 다음에야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물었다. 율리안과 안드레는 날 언제나 ‘챙’이라고 불렀다. 제대로 된 내 이름은 ‘이창욱’이라고 그렇게 여러 번 가르쳐 주었지만 그 친구들한텐 너무 어려운 이름이었던 가보다. 
 ”자, 들어봐. ‘율리안, 안드레’. 난 너희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는데 너희는 내 이름도 못 불러(같은 세 글잔데!?)?”
 “음, 어, 이 췡욱? 이쳉육?”
 결국 내 호칭은 ‘챙’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이 독일 친구들은 내가 잘 시각인 11~12시에 방을 나가서는 그 다음날 12시가 넘도록 자곤 했다. 원래 같은 방을 쓰는 사람이 일찍 일어나면 나도 일찍 일어나게 되는데, 내가 있는 방은 원래 어두운 데다 저 두 친구가 끝없이 자니깐 나도 아침에 덩달아 늦잠을 자게 되곤 했다. 결국 무료로 제공되는 아침은 백패커에서 지내는 동안 손에 꼽을 정도로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런 두 친구를 보면서 나는 항상 쟤네는 도대체 왜 여행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아침을 먹고 방에서 나갈 때까지 그 친구들은 계속 늦잠을 잔다(사실 그 친구들이 깨기 전에 항상 내가 먼저 방을 나갔기 때문에, 몇 시까지 자는지는 영원한 미스터리가 되었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가면, 둘은 멍하게 침대에 누워있다가 나에게 ‘아, 헤이, 챙’하고 인사 했다. 내가 들어올 때까지 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거나 책을 읽는 것도 아니다. 그저 멍하게 누워 2층 침대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있는 것이다. 밤에 클럽을 가는지 힘들게 청소를 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빨리 직업을 찾아야 하는 나에게 그런 모습은 부러우면서도 낭비스러워 보였다. 나는 시간에 쫓기듯이 직업을 찾는데 저놈들은 있는 시간도 저렇게 날려버린 다는 거지! 어쩌면 정말 바보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그 모습이 저 치들의 여행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보기엔 내가 불필요하게 부지런해 보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낭비스럽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나까지 마음이 편해진다. 아, 낭비해버려도 아름다운 단어 청춘이여~
 
http://kidsmoke.egloos.com

 

*BGM_ “Monkey gone to Heaven”, by Pixies.

“the creature in the sky

got sucked in ahole

Now there’s a hole in the sky”

http://kidsmoke.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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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개

  1. 아다마 님의 말:

    저거 외국나가면 써먹어야겠다 ㅋㅋ

    헤이렛츠두잇어갠! 씨-발-노-마, 언더스탠? 리핏- 씨-발-노-마

  2. 로로롱 님의 말:

    Ein Bier bitte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일어 공부한 사람으로서 빵 터지네요
    (아 두 번째 사진 안 보입니다)

  3. 깐도리 님의 말:

    빨리 나머지 다 올려주세요 현기증난단 말이에요

  4. ( ╹ ◡ ╹ ) 님의 말:

    쌰이쎼 써먹어야지 ㅎㅎㅎ

  5. foolonhill 님의 말:

    ㅇㅎ 그림잘그리시네요.
    글도 재밌게 잘 쓰시고..

    저도 일 때문에 독일 사람 몇 명 만난적이 있는데,,
    그러고보니 다 머리가 짧았던 것 같애요.
    올 해 독일을 한번 다녀올 것 같은데,
    정말 현지인도 다 그런가 확인해봐야겠어요..

    마지막 글이 심금을 울리네요. ㅜㅠ
    아 내 청춘이여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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