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Radiohead – There There
Best: Radiohead, FEATURE, 기획물 — By 더부룩 on 10월 30, 2010 at 8:36 오전대학에 합격하고 정신이 나갈 정도로 할 일이 없었던 그 해 겨울에 나는 포항 시내에서 거의 단 하나 있는 음반점에서 처음으로 라디오헤드의 앨범을 샀다. 다른 유명한 앨범도 많은데 하필 처음 산 앨범이 6집이 된 이유는 아마 커버 아트 때문이었을 거다. 오르가즘을 느끼는 남자(?)가 그려진 2집은 미친 구려보였고 4집도 그림판으로 막 만들어서 픽셀이 튄 것 같은 커버가 마음에 안들었다. 그나마 유화로 알듯 모를듯한 단어들이 쓰여져 있던 6집의 커버가 가장 괜찮아 보였던 것이다. 심지어 앨범 옆구리에는 혼자서만 밴드 이름이 세리프 체로 적혀 있어서, 나는 이게 진짜 라디오헤드의 정규 앨범이 맞는지 반신반의 해가며 앨범을 사서 나왔다.
완전히 어두워진 겨울 밤거리를 돌아오면서 굽은 손가락으로 CDP에 앨범을 걸었을 때, 크립 비슷한 곡을 기대하고 있던 나에게 그 앨범은 전혀 다른 소리를 들려주었다. 지지직 거리다 왱알앵알 거리고 심지어 울부짖기까지 하다니 이게 내가 알고 있던 그 밴드가 맞는가, 역시 어머니 말씀 믿고 클래식만 들어야 되는 거였나, 음반점 주인놈이 날 속였구나 이건 라디오헤드 앨범이 아닌건가까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쨌든 이미 포장은 뜯었고 CD를 꺼내기엔 날이 너무 추워 나는 끝까지 앨범을 들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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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그 앨범을 다 들을 수 없었다. 포항 시내에서 거의 단 하나 있는 음반점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앨범 러닝 타임보다 짧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9번 트랙을 계속 돌려듣었기 때문이었다.
그 9번 트랙은 정말 대단했다. 쿵-짝 쿵-쿵짝- 하는 드럼이 나오고, 곧이어 위이잉하는 소음과 함께 곡이 시작된다. 쿵-짝 쿵-쿵짝- 하는 리듬은 곡의 끝까지 강박적으로 지속되고 그 리듬이 반복되는 동안 곡은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흘러가서, 결국은 뒷부분의 거대한 클라이막스와 함께 끝나는 것이다. 그 클라이막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나는 뒷부분만 계속 돌려들으며 학교로 돌아왔다. 가사도 모르는 후렴구를 웅얼거리며 춤 비슷한 것 까지 쳐대면서 걸어왔으니 길거리에서 나와 마주쳤던 사람은 십중팔구 어린 것이 술이 들어갔구나 하고 생각했을 게다.
나중에 돌아와서 확인하니 그 곡의 제목은 there there였고, 남은 자습 시간동안 수십번을 반복해 들으면서 나는 이 노래가 내가 전에 들었던 어떤 음악과도 다르다는 생각을 확신하게 되었다. 목소리만 들으면 신경질적이고 기타소리만 들으면 부스스한데 그게 합쳐지니 엄청나게 멋진 곡이 나왔다. 아니, 아이구, 어쨌든 확실하게 설명은 하기 힘들었지만 뭔가가 달랐고, 전에 듣던 SG 워너비나 브람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나한테 이 곡은 단순히 좋은 노래를 넘어서 완전히 새로운 음악 세계가 있다는 걸 보여준 이정표였던 것이다. 클래식만 고상한 장르라는 선입견이 오래된 농담이란 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것이 부끄러워져서 나는 얼굴이 벌개진 채로 사람이 없는 자습실을 휙 둘러보았고, 곧 라디오헤드 말고도 앞으로 만날 새로운 음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게 기뻐져서 혼자서 헤벌쭉 헤벌쭉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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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찾아보게 된 그들의 라이브 영상은 또 더 쩔었다. 3명이서 드럼을 치는 그 장면이 충격적이었고, 기타를 스피커에 갖다 대서 위이잉 하는 소리를 만드는 장면이 충격적이었고, 옆에서 드럼을 치던 친구가 곡의 클라이막스에서 기타를 바꿔잡고 치는 장면이 충격적이었고, 관중들이 이 노래에 맞춰 파도처럼 날뛰는 장면이 충격적이었고, 심지어 드러머가 대머리인 장면이 충격적이었다(‘대머리 드러머가 있으면 쩌는 밴드’라는 선입견이 이때부터 생겼다).
유투브 동영상이 VHS 테이프였다면 다 늘어졌을 정도로 나는 그 영상을 돌려보았다. 3:02초에 노래가 끊긴다는 걸 외울 때 즈음 되어서 나는 죽기 전에 라디오헤드의 라이브는 꼭 봐야겠다고 결심했고, 사람이 저렇게 많은 글래스톤베리라는 데도 꼭 가보자고 생각했다. 결국 2년 후 모아놓은 돈을 탈탈 털어 간 배낭여행에서 그들의 there there를 들었고(너무 피곤해서인지 기대가 커서인지 그렇게 좋진 않았지만), 다시 2년 뒤에 빚까지 져 가며 글래스톤베리를 갔으니 그 결심은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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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톤베리 2010년 페스티벌 금요일의 깜짝 무대는 톰 요크와 자니 그린우드였고, 그들은 톰 요크의 솔로 앨범과 라디오헤드 곡을 합해 아홉 곡을 들려주었다. 여덟 번 째로 Karma Police가 끝나고도 관중들이 후렴구를 계속 따라부르자 둘은 씨익 웃고 뭔가를 상의하더니만 키보드를 끄고(아마 원래는 마지막 곡으로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를 들려줄 심산이었을 것이다), 기타를 들고는 Street spirit (fade out)을 부르기 시작했다.
땀에 절은채로 그 마지막 곡을 들으면서, 나는 거의 까먹고 있던 4년 전의 추운 밤 거리와 CDP와 포항 시내에서 거의 단 하나 있는 음반점을, 처음 라디오헤드를 발견해서 실실 혼자서 웃던 자습실을 기억해냈다. 좋은 노래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망쳐놓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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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개
[기사업뎃!] Best: Radiohead – There There – via #twitoaster http://www.scatterbrain.co.kr/feature/55...
이노래를 들으며 걸었던 2004년 겨울의 새벽 두시가 떠오르는 글이다ㅠ
나도 그때 음악이 내 인생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할것이라고 처음으로 “확신”했음…
추천 누르고 싶은데, 이 페이지는 추천이 안보여요..
저는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었어요. 늘어졌지만 못 버려요.
갠적으로 씨디버전을 좋아함. 확실히 사운드 표현이 잘 되니까요,
이 앨범 나오기전에 막 예약구매하고 그랬는데..;;
저는 6집 정말 좋아하는데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고있는 느낌이에요 ㅠㅠ
그리고 마지막 말은 정말 공감. 저는 다른 노래였지만요.
저도 이거 라이브로 봤을때 정말 우와 우와 우와 양쪽에서 드럼치는데 진짜 죽였음.
난 카르마 폴리스.
[기획특집] BEST: RADIOHEAD. 노래 때문에 인생 망친 이야기. 다시 말해, “There There”에 대한 이야기. http://www.scatterbrain.co.kr/feature/55... #scatterbrain #brit_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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